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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MBC 김은혜 앵커 기자는 발로 뛰어야 합니다"

6월이 되면 생각나는 기자..


NBC, ABC, CBS와 함께 미국이 자랑하는 4대 방송 중의 하나인 폭스TV의 경윤(한국명 윤경복) 기자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기자이다. 그는 웨슬리대학을 졸업하고 존스홉킨스대학에서 국제경영학 석사과정을 마친 재원이었으나, 학창시절 주미 마이니치신문 특파원 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 한 것이 시금석이 되어, 10여년간의 산고 끝에 기자가 된 한국계 여성이다.

저널리즘이 가진 독특한 매력에 자신의 전공마저 포기한 경윤 기자처럼 한국의 MBC 김은혜 앵커도 자신이 8년간 가지고 있던 플루티스트의 꿈을 접고 기자가 된 경우다. 지난 1993년 12월 MBC에 입사한 그는 1994년 사회부 기자로 출발하여, 1996년 여성 1호 정당 출입기자가 된 이래, 오늘 날의 메인 앵커가 되기까지 여성 1호라는 신기록을 갈아 쓰며, 쾌속행진을 해왔다.

그래서 그를 두고 "관운이 좋다"고 하는 이도 있다. 이 상태로 간다면 "여성 1호 보도국장은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30년 기자생활을 끝내고 은퇴한 60대의 어느 여기자가 "한국에서의 여성 보도국장은 30년쯤 뒤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다소 자조적인 예단을 했다는데 말이다.

그러나, 김은혜 앵커가 매스컴 내부의 관례를 깨고, 얼마만큼 빨리 여성 보도국장이 되느냐는 것 보다도, 그가 현재, 앵커로서의 위치가 적당한가를 묻고 싶다.

방송의 꽃인 앵커로서의 자질을 묻는게 아니다. 오히려, 그가 한정된 꽃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너무 아까워서 그의 기자로서의 타고난 근성과 능력이 아까워서 하는 말이다.

70, 80년대에 3~5%를 맴돌던 여기자 비율이 90년대에는 8%를 웃돌았고, 2000대에는 두자리 수를 훌쩍 넘어선 상황은 수리상 얼핏 보기엔 매스컴 스스로 여성 편견이 호전된 것 같지만, 유능한 여기자가 외도 해도 될 만큼의 풍요한 상황이 아닌 것이다.

그가 1996년 5월 정치부 기자 생활을 했을 때, 끊임없는 현장 지키기가 최우선이라는 선배들의 충고를 잊었단 말인가? 언론 플레이를 위해 진상을 뒤틀고 왜곡하고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정치인들을 만날 때마다 균형을 잡고 중심을 잡는 순발력이 필요한 순간들을 위해 본능적 감각을 체득했다던 그의 말이 공염불이었단 말인가?

김은혜 앵커 당신이 있는 현재의 자리는 당신 본연의 자리가 아니기에 빨리 옷을 갈아 입고, 자신의 못 다한 능력을 발휘했으면 하는 것이다.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5분, 삼풍백화점이 붕괴되었을 때, 김은혜 앵커가 사회부 2년차 올챙이(?) 기자시절의 일화다. 참사 사흘째인 7월 1일 정오, 24명의 환경미화원들이 극적으로 구출되기 직전 상황은 혼란 그 자체였다. 생존자들이 나온다는 백화점 A동 비상계단 출구에는 군과 경찰이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아이러니한 경비 경쟁을 벌였고, 보도진들의 취재 경쟁까지 가세하여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그 와중에 앳된 얼굴의 여기자가 봉쇄된 출입구 쪽으로 뛰어 들었다. 순간, 아슬아슬한 취재라인으로 애태우던 기자들은 "MBC 뭐하냐? 빠져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군경 경비라인 마저 뚫고 지하(생존자 쪽)로 향하려는 듯 밀치며 나섰다. 그 순간 경비군경이 그 여기자의 팔목을 잡으며, 돌진을 저지했는데, "어딜 만져"라는 그 여기자의 호통에 어쩔줄 모르며 당황했던 젊은 군경의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후, MBC 지인에게 그 당돌한 여기자가 누구냐고 물었는데 "2년차 김은혜 기자다"고 했다. 그 후에 수시로 풀서버(취재 범주에 없었던 기자와 범주에 있었던 기자간의 커뮤니케이션 하는 행위)때, 마주할 때 마다 그는 뭔가는 다른 대기자의 자질이 있었다. 역시 그는 후에, 정당 출입 여성방송기자 1호로서 많은 특종을 쏟아냈고, 여기자 출신 앵커 1호 등의 신기록을 세우는 등, 화려한 명예를 얻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아끼는 많은 선후배(특히 여기자)들의 기대를 저버리면 안된다. 기자는 평생 기자여야 한다. 정치부 기자시절, 대선주자들과 새벽 된장찌개를 동식하며, 밀착 취재를 했던 발로 뛰었던 근성을 살려야 한다. 여기자의 수명이 짧아 제도권에서 타의에 의해 물러나는 시기 조차도 당신이 최장수 기록을 세움으로써, 후배 여기자들의 귀감이 되야 한다. 그래야 당신이 주장하는 "약자에게 약하고 강자에 강한 무관의 여왕"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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