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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

'염재야록'을 저술한 조희제 선생,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

항일 의병과 애국지사들의 절의실적을 기록


[NBC-1TV 박승훈 기자]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염재야록」을 저술한 조희제<趙熙濟, 1873 ~ 1939> 선생을 2016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선생은 전북 임실 출신으로 항일의식이 투철한 집안에서 자랐으며, 일제에 맞서 목숨을 끊은 송병선과 항일투쟁에 나섰던 기우만 의병장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다.

선생은 수십 년에 걸쳐 각지를 돌아다니며 독립투사들의 항일사적과 애국지사들의 행적 등 항일투쟁 기록을 모았다. 또한, 법정에서 애국지사들의 재판 과정을 방청하며 기록하기도 하였다.

명성을 떨치고 그 행적이 역사에 잘 기록된 인사보다는 초야에 묻힌 애국지사들의 충절을 기록했다. 선생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책의 표지에 「덕촌수록」이라고 이름을 붙인 후 1질은 책상 위에 두고, 1질은 궤짝에 넣어 마루 밑에 묻었다.

그러나 「염재야록」 편찬 사실이 1938년 일제 경찰에 발각되면서 서문을 썼던 최병심, 발문을 썼던 이병은, 교정을 보았던 김영한 등과 함께 선생은 임실경찰서로 연행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선생의 글은 물론이고 집안 대대로 간직해온 다양한 자료들이 모두 압수되었다.

임실경찰서에 연행되어 거의 목숨이 끊어질 정도로 혹독한 고문을 당한 후 집으로 돌아왔으나 울분을 참지 못하다가 일제의 단발 종용에 결국 자결 순국하였다. 다행히도 마루 밑에 보관해 두었던 「덕촌수록」을 해방 후 선생의 제자인 조현수가 「염재야록」으로 간행하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염재야록'은 당시 의병운동사와 독립운동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사료적 가치가 높다. 정부는 항일 의병과 애국지사들의 행적을 목숨 걸고 기록한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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