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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특별기고]아까시꽃 향기 바람에 날리는 오월의 추억

동요 '과수원길'에도 등장하는 ‘아카시아’ 정식 명칭은 '아까시나무'다

[NBC-1TV 특별기고 이윤서]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동요 '과수원길'에도 등장하는 이 꽃을 우리는 ‘아카시아’라고 불러왔다. 그러나 정식 명칭은 '아까시나무'다. '아카시아'는 아까시나무와 완전히 다른 열대 식물이라고 하니 알고 나서는 이름을 제대로 불러야 하겠지만 그게 쉽지는 않을 듯하다.
 

어릴 적 초등학교를 멀리 걸어다녔다. 동네 밖을 나서면 아까시나무 그늘이 터널을 이룬 등성이를 지났다. 초여름 친구들과 집에 돌아오는 지루한 하교길에 햇볕을 피해 아까시나무 그늘길에 앉아 꽃도 따먹고, 가위바위보를 해서 잎을 하나씩 따는 놀이를 했다. 이긴 사람은 진 사람 이마에 꿀밤을 때리며 다시 이 놀이를 반복하곤 했다. 잎을 다 딴 줄기로 미장원놀이도 했다. 퍼머를 한다고 줄기를 구부려 머리카락을 고정하여 라면 머리를 만들고 놀면서 즐거워했다.


아까시나무가 우리 주변에 흔한 만큼 우리는 이 나무와 가깝고 친숙한 삶을 살아왔다. 이 나무가 있었기에 잊지 못할 아련한 추억이 있고 나름의 문화가 존재했다. 그래서 새삼스럽게 고마운 나무이다.
  

우리나라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아까시꽃은 소박한 시골 여인처럼 수수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꽃대에 조로록 옹기종기 달린 꽃송이 하나하나가 다복한 집안의 자매들처럼 정답고 어여쁘다. 발레 치마가 들린 것 같은 우윳빛 꽃잎 가운데에 연둣빛이 어리는 꽃송이들이 꽃대에 조롱조롱 달려있다. 가까이 천천히 봐야만 발견할 수 있는 귀엽고도 소박한 아름다움이다. 
 

꽃의 생김새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아까시꽃의 가장 큰 매력은 향기이다. 늦봄과 초여름 사이에 날아드는 달콤한 이 향기는 우리의 후각을 속수무책으로 만들고 정신까지 아찔하게 한다.


아까시꽃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몸과 마음의 모든 감각을 활짝 열어놓고 진한 아까시 향을 가슴 깊숙이 받아들여 음미해 보라. 시간을 멈춘 행복을 내 몸에서 흠뻑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향긋한 향기를 풍기는 아까시꽃은 온동네 달콤한 간식이 되었다. 아까시나무 꽃은 관상용이라기보다 진달래나 감꽃처럼 ‘먹을 수 있는 꽃’이었다. 아까시꽃을 송이째 따서 먹다가 송충이를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의 배고픔과 단 것에 대한 갈증을 잠시나마 해소해 주던 고마운 꽃이었다.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아까시나무는 꽃도 잎도 모두 먹을 수 있다. 어린잎으로 생채 샐러드를 하거나 활짝 피기 직전의 꽃을 따다가 튀김을 해 먹는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면 아까시꽃 튀김을 맛나게 먹는 주인공의 행복한 모습이 나온다. 원래 찹쌀풀을 묻혀 말려서 튀겨 먹는다고 알고 있지만 튀김옷을 바로 묻혀 튀겨도 바삭하면서도 은은한 향이 살아 있어 좋다.
 


아까시꽃은 사람 뿐 아니라 벌들도 매우 좋아한다. 우리나라의 아까시 꿀은 당도, 투명도, 영양가면에서 월등하여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한국양봉협회의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연간 양봉(주로 꿀 생산)산업 규모가 약 4천억 가량인데 이 중 70~80%가 아까시나무를 밀원으로 한다니 아까시 없는 우리나라의 꿀은 생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나무까지 다재다능한 연예인처럼 기특하고 가상하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아까시나무를 쓸모없는 나무라고 천대해 왔다.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산을 망가뜨리기 위해 일부러 아까시나무를 심었다는 등의 근거 없는 모함이 떠돌기도 했다. 그러나 아까시나무는 황폐했던 우리나라의 산림을 비옥하고 푸르게 만들었던 일등공신이다. 30~4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 풀 한 포기 찾아볼 수 없는 민둥산이 많이 있었다. 이렇게 황폐한 산에는 어떤 나무를 심더라도 잘 자라지 않는다.


아까시나무는 목본이지만 콩과(科) 식물이다. 콩과 식물은 공중의 질소를 고정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나무 뿌리의 혹을 통해 땅을 비옥하게 하는 질소비료 공장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다른 식물이 자라지 못하는 척박한 땅에 아까시나무를 심으면 스스로 비료를 생산해 내면서 땅을 점차 비옥하게 탈바꿈시켜 다른 식물의 생장까지 돕는다니 이보다 더 기특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가 하고 싶은 것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자’는 몽실학교의 슬로건을 아까시나무는 어떻게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 뿐만이 아니다. 최근엔 목재로서의 효용성도 주목받고 있다. 목질이 치밀하고 단단하며 수분 함량이 적어서 습기에 강하고 잘 썩지 않아 유럽에서는 고급 인테리어재로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향기로, 간식으로, 장난감으로, 밀원으로, 비료로, 목재로, 땔감으로까지 두루 쓰이는 아까시나무는 우리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이다. 다만 이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한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기간이 7일 내지 10일 정도밖에 안 된다는 점이 무한히 아쉽다.


아까시꽃 향기의 바다에 몸을 풍덩 내던진 채 꿀벌이 되어 날아다니는 상상을 해 본다.  팔방미인 아까시나무, 우리와 삶을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고맙다.



오분간
                              나희덕

이 꽃그늘 아래서

내 일생이 다 지나갈 것 같다

기다리면서 서성거리면서

아니, 이미 다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기다리는 오분간

아카시아꽃 하얗게 흩날리는

이 그늘 아래서

어느새 나는 머리 희끗한 노파가 되고,

버스가 저 모퉁이를 돌아서

내 앞에 멈추면

여섯살배기가 뛰어내려 안기는 게 아니라

훤칠한 청년 하나 내게로 걸어올 것만 같다

내가 늙은 만큼 그는 자라서

서로의 삶을 맞바꾼 듯 마주 보겠지

기다림 하나로도 깜박 지나가버릴 生,

내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을 때쯤

너무 멀리 나가버린 그의 썰물을 향해

떨어지는 꽃잎,

또는 지나치는 버스를 향해

무어라 중얼거리면서 내 기다림을 완성하겠지

중얼거리는 동안 꽃잎은 한 무더기 또 진다

아, 저기 버스가 온다

나는 훌쩍 날아올라 꽃그늘을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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