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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순국선열 매헌 윤봉길 의사 순국 84주기 추모식

(사)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주관으로 19일 오전 11시, 효창공원 의사 묘전에서 열려


[NBC-1TV 김종우 기자]「매헌 윤봉길 의사 순국 84주기추모식」이 19일 오전 11시, 효창공원 의사 묘전에서 (사)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회장 김진우) 주관으로 열린다.


윤봉길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상하이(上海) 홍커우공원(虹口公園)에서 열린 ‘일본군 상해 점령 전승경축식장’에 폭탄을 투척하여 일본군 수뇌부를 폭사시킴으로써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리고 한국독립운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이날 추모식은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이경근 서울지방보훈청장, 박유철 광복회장을 비롯한 독립운동 관련 단체장, 기념사업회원, 시민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식사 및 추모사, 헌화ㆍ 분향, 추모가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윤봉길 의사 공적  윤봉길 의사(1908. 6. 21.~1932. 12. 19.)는 충남 예산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ㆍ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일제의 식민교육을 배척하여 학교를 자퇴하고, 사설 서당인 ‘오치서숙(烏致書塾)’에서 한학을 수학하였다.


1928년에는 ‘부흥야학원(富興夜學院)’을 설립하여 농민의 자녀를 교육하였고, 1929년에는 ‘월진회(月進會)’를 조직하여 농민계몽운동과 농촌부흥운동, 독서회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농민독본>을 편찬하여 농촌 청년들에게 농민의 단결과 민족정신의 배양, 애국사상을 고취하는 등 농촌운동에 헌신하다가 일제의 압박으로 중국으로 망명하여 김구 선생이 이끌던 ‘한인애국단’에 가입하고 거사를 자청하였다.


1932년 4월 29일, 일왕(日王)의 생일인 천장절(天長節)을 맞아 일본군의 상해 점령 전승 경축식을 홍커우공원에서 거행하자 의거를 감행하여 일본의 수뇌부를 폭사시켰다. 의사의 거사는 우리 독립운동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으며, 조선과 중국의 항일연대에 크게 기여하였다.


의거 직후 현장에서 일경에게 체포된 의사는 상해 일본 헌병대에서 가혹한 고문과 취조를 받았으며, 그해 5월 상해 파견 일본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받았다. 이후 11월 18일 오사카 육군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12월 19일 오전 7시 40분 가나자와 미고우시 육군 공병 작업장에서 총탄을 맞고 순국하였다.


윤봉길 의사의 유해는 김구 선생의 요청에 의해 이봉창, 백정기 의사의 유해와 함께 봉환되어 1946년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에 국민장으로 안장되었다. 정부에서는 의사의 공적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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