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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동포 학살의 참극을 알리려다 일제에 암살당한 추송 장덕준 선생

2017년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

[NBC-1TV 구본환 기자]국가보훈처(처장 피우진)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추송 장덕준(秋松, 張德俊, 1892~1920) 선생을 2017년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선생은 1892년 황해도 재령의 빈농 집안에서 태어나 명신중학교에 진학하여 1911년에 졸업하고 모교 교사로 2년간 일했다.


1914년 평양일일신문사에 입사하여 조선문 신문부 주간으로 근무하며 조만식, 김동원, 이덕환 등 평양의 주요 지식인들과 교류하였으며 1915년 일본 유학길에 올라 세이소쿠(正則) 예비학교에 다니면서 재동경조선인유학생 학우회에 참여하였다.


1920년 김성수, 장두현 등과 함께 민간신문인 동아일보 창간에 참여하여 논설반원과 통신부장, 조사부장을 겸하였다. 선생은 창간 다음날인 4월 2일자부터 4월 13일자까지 「조선소요에 대한 일본여론을 비평함」(필명 ‘추송’)이라는 논설을 통해 3․1운동을 왜곡한 일본의 여론을 비판했다. 


1920년 10월 만주 훈춘에서 일본군이 청산리에서 독립군에게 패한 보복으로 조선인 수천 명을 학살한 ‘경신참변’이 발생하였고, 선생은 간도 현장으로 달려가 일본군의 만행을 취재했다.


취재 중이던 어느 날 이른 아침, 일인 두세 명에 불려 나간 후로 소식이 끊어져 한국 언론사상 첫 순직 기자가 되었다.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발간한 독립신문(1921년 10월 28일자)은「장덕준씨 조난논평」이라는 제하에 선생이 일본군에 암살당하였다는 기사를 보도하였다.


한국기자협회는 1971년에 ‘기자협회 기장(記章)’을 제정하였는데, 장덕준선생의 투철한 기자정신을 기리고 본받자는 취지로 기념메달의 뒷면에 선생의 얼굴을 새겨 넣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적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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