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한 승부의 세계인 스포츠에서는 기록만큼 소중한게 없는 것 같다.
현역선수로 뛸 때는 물론이고, 은퇴 후에도 수시로 따라 붙는 것이 기록이다.
프로의 경우는 기록(성적) 자체가 상품으로 거론되고 종국에는 몸값 이라는 방법으로 레벨이 정해지기 때문에 기록 그 자체는 개인으로나 팀 모두 절대적인 것 같다.
지난 1978년부터 1988년까지 10여년간 분데스리가 프랑크푸르트에서 활약했던 차범근 선수, 그는 한국 축구사에 빛나는 금자탑을 세운 스타중에 스타이다.
그 차범근이 지금 분데스리가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축구 강국이었던 분데스리가에서 1985년과 1986년 2년 연속 MVP를 차지했던 차범근의 향수원(?)은 다름이 아닌 심재원 선수이다.
지난 8월 27일 약혼식 일정으로 일시 내한했던 심재원이 서울의 리베라호텔에서 있었던 공개 기자회견에서 "동료 선수들이 나를 차붐이라고 부른다"고 한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공공연히 차범근이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팀 선수나 팬들, 그리고 교포들의 입에서 차범근의 전성기에 대한 성적이나 일화 등이 수시로 회자되고 있다고 한다.
차범근이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했던 시기가 1978년에서 1988년 이다.
10년의 세월을 건너 뛰어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그의 명성도 명성이거니와 그가 활약했던 프랑크푸르트팀에 올해 한국의 심재원(24)이 입단하면서 부터였다.
아직도 동양인이 희귀(?)한 분데스리가이기에 심재원을 보는 동료들이나 팬들의 시선은 또 한 명의 차범근(?) 그 자체라는 것이다.
화려한 공격수로 2년(1985~1986년) 연속 MVP로 등극한 축구 황제 차범근을 2부리그의 신인 수비수 심재원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심재원을 보고 차범근을 연상하는 프랑크푸르트의 정서는 우리의 선입견과는 분명히 다른 뭔가가 있다고 한다.
현지 팬들이 그렇고, 교포들이 그렇다. 어찌보면 독일에 있던 가수 조영남 씨가 차범근을 보고 조국에 대한 긍지를 느꼈던 것처럼, 심재원을 보는 교포들이 조국에 대한 향수를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문제는 심재원의 활약에 따라서 스승뻘인 차범근의 명성이 상대적으로
상기된다는게 현지의 견해이다.
지난 프랑크푸르트 홈 경기때, 독일대사관의 영사가 경기를 관전하고 10월 2일 심재원 부부를 관저로 오라는 초대장을 보낸 것이 현지 축구에 대한 좋은 예이다.
이제 심재원을 알아보는 현지인들이 많아 가는 곳마다 사인 공세에 시달린다고 한다. 시내를 나가도 길거리를 지나가도 사람들이 먼저 알아보고는 악수를 청한다.
쇼핑센터의 점원들도 예외 없이 악수를 청한다. 현재 독일 현지인의 팬레터가 많이 늘고 있으며, 심재원의 사진이나 카드를 보내달라고 극성을 부리는 팬마저 생겼다.
한국의 팬들과는 다르게 편지 안에 또 하나의 편지봉투를 보내어 우표를 붙여 보내오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이제 심재원은 분데스리가의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다.
그러나 심재원은 스승뻘인 차범근의 지난 날을 돌이켜 보며 그가 걸어왔던 길이 결코 쉽게 얻어진 것만은 아닌 것을 배워야 한다.
우선은 "올해 1부리그로 진출하는 것이 꿈"이라던 그의 말 처럼 행여나 대선배의 이미지에 누가 되지 않도록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심재원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