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는 과연 특별한 유전자가 있는가?.." 실제로 과거의 연구들을 보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다양한 형태로 천재들이 출현하였다.
모차르트처럼 소년 시절에 이미 신동이라고 알려져 있었던 예도 있고, 찰스 다윈처럼 어렸을 때에는 '둔하고 어리석다.'는 평을 받은 예도 있다. 천재들 중에는 순간적으로 천재성이 발휘되고 후에는 전혀 천재성이 발휘되지 못한 사람도 있고, 피카소처럼 자신의 천재성을 아주 오랫동안 지니고 유지하는 사람도 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조수철 교수가 번역한 『천재성과 마음』(Andrew Steptoe 저, 학지사)에서는 천재에 대한 역사적인 개념의 변천과정을 서술하고, 역사적으로 각 분야에서 천재라고 인정되는 대표적인 인물들을 선정하여 다양한 관점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또한 유전적·비유전적 요인들과 셰익스피어·바이런 등 문학가에 대하여도 다룬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해석에 있어서는 역사측정법이라는 방법을 적용하여 전기적 배경과 정확한 작품 시기에 대한 정보가 있는 경우에 작품 주제의 내용과 형식이 어떻게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는가를 과학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음악가로는 모차르트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그가 스트레스에 어떻게 대처하였는가를 다루면서 엄청난 스트레스하에서도 그렇게 뛰어난 곡을 작곡하게 된 경위를 재미있는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또한 하디와 라마누잔 등 수학자에 대하여도 서로 비교하여 다루고 있다. 하디는 2세경에 수학에 대한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라마누잔은 20세가 되어서야 수학자가 될 결심을 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두 학자의 차이에 대하여 소개하였다.
모차르트나 존 스튜어트 밀처럼 어려서부터 천재성을 발휘한 천재도 있지만, 어려서는 별 특별한 점이 눈에 띄지 않았으나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천재성을 발휘하게 된 인물들-예를 들면, 찰스 다윈, 마이클 패러데이, 조지 스티븐슨 등-에 대하여도 그 발달과정을 여러 가지 관점에서 소개하였다. 또한 천재성, 창의성과 광기의 관계에 대하여도 현재의 진단기준을 적용하여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천재란 워낙 이례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연구를 진행함에 있어서 어느 특성 가설이나 원칙이 독자적으로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이 책에서 다루어질 다양한 학자들의 견해는 사회과학에서부터 인간성에 대한 연구까지 모두 포함하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많은 흥밋거리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천재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각 원칙이나 이론 간에 마음에 있어서의 합치점을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독자들이 예술과 과학의 천재성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하는 데에 현대의 심리과학이 제공할 것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심리적 과정이라는 맥락에서 뛰어난 인물들의 생애와 작품을 검증함으로써 우리는 창조성을 해명하는 길을 향해 가게 될 것이다.
부모의 관점
똑똑한 부모는 아이에게 ‘똑똑한 유전자’와 지적 자극을 모두 주는 경향이 있다. 운동선수인 생물학적 부모가 키운 아이는 운동에 대한 권유와 모델뿐만 아니라 강한 신체를 물려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부분적으로 유전자 때문에 어떤 유아는 까다롭고 짜증을 잘 내는 반면에 다른 유아들은 행복하고 순응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는 그들의 어른 양육자로부터 다른 반응을 이끌어 낸다. 물론 이 과정은 우리의 환경이 우리의 내재적 성격, 외모, 재능과 차별적으로 반응하면서 생을 통해 계속되는데, 이것을 반응적 혹은 유발적 유전-환경 상관관계라고 부른다. 부분적으로 유전적 원인 때문에 아이들은 그들의 환경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모습을 따라가게 되고, 자신의 유전적 체질에 어느 정도 잘 맞는 환경을 찾거나 만들어 낸다. 이것이 능동적 유전-환경 상관관계의 예다. 첫 등교나 롤러코스터를 처음 타는 경험이 어떤 아이들에게는 성장과 자신감을 자극하는 즐거운 흥분이 되고, 다른 아이들에게는 끔찍하고 파괴적인 경험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불로 인해 계란은 굳어지게 되고 버터는 녹게 된다. 이것이 바로 유전-환경 상호작용이다.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들이 가진 재능에 대해 적절하게 판단할 수 있다. 특별히 재능을 부여받은 어린이들의 예에서 볼 때 그들의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2세에 읽거나 더하기를 하는 능력에 대해서 정확한 묘사를 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이는 4~5년 후에 아이들의 IQ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정확한 예측에 해당하였다. 그러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의문이 남아 있다. 만약에 부모들이 아이들의 재능을 확인할 수 있다면 애당초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아이들에게 주목하도록 하느냐는 것이다. 무엇이 아이들의 격려를 부추기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초기에 재능을 확인해서 그 재능이 쉽게 창의성으로 변화하도록 하는 촉매제가 되어 줄 수 있을까?
아이가 천재냐 아니냐 하는 것을 판단하는 것은 아주 조심스러운 일이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교훈은 아이들 내부에서 어떤 분야에 가장 뛰어난 재능을 보여 주고 있는가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키워 주는 일이 부모나 교사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는 사실이다.
천재는 어떻게 판별 되는가
창조성은 과연 무엇이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천재로 인정해야 하는가.
새로운 영감은 대부분 쉽게 기억에서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 영역에서 받아들여질 만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평가하고 결정하는 일단의 전문가집단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모든 변화는 버림받게 된다. 새로운 변화를 평가하여 걸러내는 전문가집단을 우리는 ‘분야’라고 총칭한다.
창조적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누구인가? 창조성에 관한 연구를 하는 분야에는 어린이들을 다루는 교사나 대학원생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그들이 아이들을 판단한다. 아이들이 창조성 검사에 어떻게 답했는지 평가하고, 아이의 창조성을 판단할 만한 여러 흔적을 모아 추정하며, 다른 기관에서 검사한 여러 서류를 검토하여 ‘이 아이는 창조적인 아이다.’라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앞서 말한 그런 부류의 사람들인 것이다. 이런 식으로 평가된 창조성이라는 것은 다른 영역에서 말하는 창조성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노벨상을 결정하는 위원회이건, 네 살짜리 아이의 낙서를 보고 평가하는 것이건 간에, 어떤 수준에서 보더라도 창조성을 평가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작품이 창조적이고 그 영역의 발전에 기여하는 데 충분한지를 결정하는 데 인력이나 시간적으로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사회적인 흐름
사회적인 변화와 흐름에 따라 창조성은 어떻게 변해가는가? 요즘에는 반 고흐의 그림들이 굉장히 창조적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생전에는 당시 사람들에 비해서 지나치게 시대를 앞서갔기 때문에 무식한 부유층들의 비웃음을 샀고, 자신의 천재성을 인정받지 못한 채 가난 속에 허덕이며 홀로 죽어야만 했던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당시에 사람들이 더 똑똑했더라면 반 고흐의 그림은 환영받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수백 년 전 그의 그림은 단지 정신병자가 어딘가에 처박혀서 환각을 그린 것 같은 희한한 그림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 후로 수많은 화가, 비평가, 수집가들이 새로운 미적 기준을 가지고 그의 그림을 해석하는 과정을 거쳐서야 비로소 수준 이하의 졸작이 희대의 걸작으로 칭송받기에 이른 것이다.
창조적 산물을 평가하는 분위기가 변하지 않았더라면 반 고흐의 그림은 지금도 빛을 보지 못하였을 것이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우리가 그를 인정해 주지 않은 상태에서도 그의 작품이 어떤 식으로든 창조적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