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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책)

[서평]나는 감동을 전하는 기자이고 싶다

MBC 김은혜 앵커 저서57개 이야기


수년 전 서울에 있는 한 여자고등학교에서 '장미꽃의 아름다움을 논하라'는 주제의 논술이 주어진 적이 있었다. "꿈 많은 여고시절의 다양한 상상력을 도출하기 위해서"라는 담당 교사의 의도와는 달리 의외로 획일화된 논조의 글들이 쏟아졌다는 자조적인 푸념을 들은 적이 있다.

논술에 참여한 학생의 90%가 "장미꽃의 가시를 운운했다"는 것이다. 장미꽃을 상상하면서 꽃송이는 보지 않고, 장미꽃의 줄기에 있는 '가시'에 대한 논리만 서술했다는 것이다.

지난 1999년 4월 26일 MBC '9시 뉴스데스크'의 메인앵커로 등장한 김은혜(31) 씨의 이미지도 학생들의 '장미의 가시론"과 무관치 않다.

최초의 기자 출신 앵커우먼이라는 수식어 뒤에 따라붙는 그녀의 이미지는 너무 획일화되어 있다. "당당하다"도 부족해 "강하다"는 이미지가 이미 그녀의 트레이드 닉네임이 되어 버렸다.

지난 7월 20일 초판이 발행된 '나는 감동을 전하는 기자이고 싶다'란 책은 여기자로 국내의 첫 앵커의 역사를 새로 쓴 그녀가 이 시대 여성들에게 전하는 도전과 성공의 메시지가 잔잔하게 그려져 있다.

언필칭, 당당함 속에 감추어진 부드럽고 아름다운 김은혜 특유의 매력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도서출판 비전코리아(대표 이범상)가 발행한 이 책은 방송기자 6년에 앵커생활 3년이라는 다양한 관록의 그녀를 조명하기에는 287페이지라는 책의 지면이 너무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인들도 흔히 자신을 표현할 때 "자신의 살아 온 역정을 글로 쓴다면 소설책 몇 권은 된다"고 하는데, 사연 많은 취재원들만 쫓아 다녔던 기자들에게 9년이라는 세월은 결코 짧을 수만 없기 때문이다.

역사의 현장에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가까이 다가가 지켜볼 수 있다는 기자의 매력을 향유한 경력 탓에 "대학에 나가 특강도 하고 원고를 뿌려보기도 했다"는 그녀의 추억담은 "차라리 사치에 가까운 넋두리에 불과하다"는 거부감이 생기는 대목이다.

그녀가 방송기자로서 동분서주 했을 때의 한국사는 '사고공화국'이라는 오명으로 연일 아비규환이 펼쳐진 기억하기 조차 싫은 나날이였기 때문이다.

총4부로 나눠진 '나는 감동을 전하는 기자이고 싶다'는 57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진실을 캐는 마이크'에서는 지존파사건, 삼풍백화점 붕괴참사, 탁명환 살해사건 등 사회부 기자시절의 무용담이 실려 있고...

제2부 '오늘도 칼날 위에 선다'에서는 여성 첫 정당 출입기자시절의 활약이 그려져있다.

제3부 '세상과 만나다'는 베일에 가려져 있던 그의 사생활이 잔잔히 묘사되어 있는데 특히 이 이야기는 기자를 지망하는 학생들이 눈여겨 볼 만한 대목이다(기자가 되는 과정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기 때문이다).

1993년 MBC를 지원하는 6천명의 지망생 중 여성 수는 2천명이었는데 그 중에 여기자는 단 한 명만 뽑히던 시절에 그녀가 선택되었다. 어쩌면 엄청난 경쟁률 자체가 오늘날의 그녀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을 수도 있다.

아직도 방송기자 출신의 첫 앵커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그녀에게 제4부 '나는 가끔 뉴스보다 감동을 전하고 싶다'는 그만의 방송철학을 엿볼 수 있는 청사진이다. 마치 미국의 CNN이나 영국의 로이터통신의 앵커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될 정도이다. 때로는 미국의 대표적인 앵커 바버라 월터스 같기도 하다.

그녀가 여기자로 정당 출입 1호가 된 이후, 정당에서의 여기자는 이제 흔한 일이 되었다. 그의 표현대로 서구 선진국에서처럼 5년 이상의 기자생활을 거치게 하고, 그 만큼 현장을 뛴 뒤에야 앵커 자리에 앉게 하는 풍토도 어쩌면 그의 활약도에 따라 한국 언론사의 새 풍속도를 그리게 될지도 모른다.

MBC가 1999년 4월 26일 이미 김은혜 앵커라는 물감으로 한국 언론의 풍속도를 곧바로 그리고 있을 때, 타 방송사에서도 같은 그림을 '스케치'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지울 수 있는 연필로 말이다.

장미꽃을 꽃송이와 가시로 따로 볼 수 없듯이 김앵커의 당당함 속에 숨겨진 여성다움을 동시에 볼 수 있어야 한국 최초의 여기자 출신 앵커의 참모습을 직시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감동을 전하는 기자이고 싶다"는 그녀의 다양한 모습을 리얼하게 엿볼 수 있는 '몰래카메라'와 같은 재미가 묻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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