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C-1TV 김종우 기자]추석 연휴 마지막날인 10일 오후 6시 20분께 김포 북변동 청구한라아파트 210동에서 큰 불이 난 가운데 119구조대원들이 화재가 난 반경의 입주자들의 안전을 확인하고 있다.
[NBC-1TV 김종우 기자]추석 연휴 마지막날인 10일 오후 6시 20분께 김포 북변동 청구한라아파트 210동에서 큰 불이 나 검은 연기가 하늘로 피어오르고 있다.
[NBC-1TV 김은혜 기자]4일 오후 태권도원(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와 청량리 소재) 개원식에 참석한 정홍원 국무총리를 경호하던 관계자가 경계지역을 벗어나려는 참석자를 제지하고 있다.
[NBC-1TV 박승훈 기자]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왈우(曰愚) 강우규의사 의거 95주년 기념식'이 2일 오전 11시 구 서울역 광장에서 강우규의사기념사업회(회장 강인섭) 주관으로 열린다고 밝혔다. 강우규의사는 1919년 9월 2일, 당시 남대문 정거장이었던 구 서울역 광장에서 제3대 총독으로 부임하던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일행을 향해 폭탄을 투척하여 일제의 침략성을 폭로하고 대한인의 자주독립 의지를 만천하에 알린 독립유공자이다.이날 행사는 안중현 서울지방보훈청장, 기념사업회원, 시민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사업회장의 인사말 및 경과보고, 서울지방보훈청장을 비롯한 참석 내빈의 기념사 순으로 진행된다.☞강우규의사 공적강우규의사(1855. 7. 14~1920. 11. 29)는 평남 덕천에서 출생하였으며, 1910년 경술국치 후 북간도 두도구(頭道溝), 길림, 시베리아, 연해주 등지를 떠돌다 길림성 요하현(遼河縣)에 광동(光東)학교를 설립하여 민족교육을 통한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다.1919년 3ㆍ1 독립운동에 호응하여 만주, 노령 등지에서 만세 시위를 전개하고, 그 해 5월 노령의 노인동맹단(老人同盟團)에 참여하여 조선 총독을 폭살시킬 계획을
[NBC-1TV 박승훈 기자]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한국청년전지공작대 대장 및 한국광복군 제5지대장으로 활약한 나월환 선생을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고 29일 밝혔다.1912년 10월 14일 전남 나주에서 태어난 선생은 상해 중국중앙육군군관학교 졸업 후 중국 헌병학교 및 군관학교 교수를 거쳐 중국군 헌병장교로 복무하였다. 1939년 11월에 아나키즘에 참여한 인사들과 한국청년전지공작대를 결성하여 일본군 점령지역 내 한인청년들을 대상으로 선전․심리전을 전개하였으며, 중국군민을 대상으로 한 연극공연으로 한․중 공동 항일 유대를 강화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선생은 일부 대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41년 1월 1일 한국청년전지공작대 대원을 이끌고 한국광복군 제5지대로 합류하여 초모․선전․첩보․유격전을 전개하였으며 특히, 일본군 점령지역 내에 반일사상을 고취시켜 한인청년을 모집함으로써 광복군의 인적토대를 확충시켰다.또한 한국청년훈련반을 운영해 모집된 한인청년을 정예병사로 훈련시킨 결과 공작대 결성 당시 28명이던 대원수를 1940년 말에 1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NBC-1TV 박승훈 기자]국가보훈처는 인천상륙작전의 영웅인 해군 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하사를 9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하였다고 밝혔다6.25전쟁 당시 낙동강 지구까지 밀린 전세를 완전히 뒤바꿔 놓아 노르망디상륙작전과 함께 대표적인 상륙작전으로 손꼽히는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는 대한민국 해군첩보부대의 헌신적인 활약이 있었다.그 주역인 임병래 중위는 1922년 평안남도 용강 출생으로 1941년 평양 숭인상업학교를 졸업한후 1950년 4월 20일 해군 중위로 임관하여 해군정보국 창설 당시부터 창설요원으로 많은 활동을 하였고 영흥도 첩보전 조장이었다홍시욱 하사는 1929년 출생으로 1948년 6월 1일 해군의 신병 10기로 입대후 동 작전의 첩보대원으로 참여하여 임무를 완수하고 1950년 9월 14일 장렬히 전사하였다.인천상륙작전 당시 ‘영흥도 첩보전’ 일명 X-RAY작전에서 해군정보국 첩보대는 인천 앞바다에 위치한 영흥도를 거점으로 인천에 잠입하여 인천 해안포대의 위치, 병력배치 상황, 주둔 병력의 규모와 해안방어태세 등을 파악하는 작업을 하였다. 인천상륙작전 D-day가 임박하여 영흥도 첩보기지는 철수명령을 받았다. 하지
[NBC-1TV 김종우 기자]학생중심의 학교경영으로 자신이 재직했던 학교를 명문학교로 발전시키며 교육계의 이목을 집중 시켰던 윤호선 금파중학교(경기도 김포시 김포대로 926번길 88-9) 교장이 27일 오전 퇴임식을 끝으로 36년 6개월간의 정든 교직 생활을 마감했다.1954년 12월 5일 충남 공주에서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난 윤 교장은 공주대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고 1978년 3월 교직에 입문 한 후 김포제일고와 하성고, 금파중학교 등에서 25년간 교사로 재직했다.2003년 3월 하성중 교감을 거쳐 김포중학교에서 4년 6개월간 교감으로 활동 한 후 2007년 9월 금파중학교 4대 교장으로 부임한 윤 교장은 5대에 이르는 지금까지 7년간 새로운 아이템과 열린 의사소통으로 교육계와 지역사회에 강직하고 유능한 교육자로 인정을 받아왔다.특히 자신의 마지막 근무지였던 금파중학교를 특유의 사명감으로 명문화시켜, 타 학교 교직원들도 ‘금파중’에서 근무하고 싶어 할 만큼 성공한 교육 CEO로 존경을 받았다. 한편 2년 전 자신의 병간호를 위해 명예 퇴직한 부인 한영애 전 교장과의 사이에서 1남 1녀를 둔 그는 “퇴임 후에는 부인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며
[NBC-1TV 김종우 기자]윤호선 금파중학교(경기도 김포시 김포대로 926번길 88-9) 교장(왼쪽)이 27일 오전 교내 체육관에서 열린 자신의 퇴임식에서 김영리 교감으로 부터 경기도교원단체 총연합회장의 표창장을 전달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