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월 23일 오후 4시 20분경 수원에 있는 화홍문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추운 기온 탓에 얼굴을 찌푸리고 있지만 이들 부부는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역력했다. 언핑칭 "끌어주고 밀어주고"였다.
창단 4년차인 '서울경찰 트루퍼스 야구동호회'가 꿈의 잠실야구장에서 화려한 플레이를 선보였다.트루퍼스는 28일, 잠실구장에서 불루스 원 샷(150개팀으로 구성된 한강리그 1위팀)과의 친선경기에서 공수 맹활약을 펼치며 선전, 프로야구 관계자들을 놀라게했다.이날 경기를 특별지원 한 두산 베어스의 김태룡 홍보부장도 "너무 잘한다. 수준급이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한편 격려차 구장을 찾은 김포공항경찰대 김병구 대장은 "8대 6으로 석패 했지만, '트루퍼스'가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했다"며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오늘(29일)은 건국 이래 가장 참혹했던 삼풍백화점(대표 이준) 붕괴사고 만 8주년이다.1천 5백여명의 사상자를 낸 그날의 참사는 '부실시공'과 '안전불감증'이 불러 온 인재(人災)였다.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5분, 서울 서초구 서초동 1685-3번지에 소재했던 지하 4층, 지상 5층의 초호화 백화점이 붕괴되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1분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단일 면적(4,154평) 사고로는 세계최악(사망 502명, 부상자 1천여명)이었다.오후 5시 40분경에 에어컨이 일시에 꺼지면서 '꽝'하는 폭발음과 함께 백화점 A.B동 중 A동이 지상 5층부터 무너져내려 지하층까지 붕괴되는 사상 초유의 참사가 난 부실 덩어리였던 삼풍백화점은 1992년 10월(1차), 1992년 11월 5일(2차), 1995년 3월(3차)의 다중이용시설 안전점검에서 "모두 이상없음"이라는 판정을 받은 것으로 나타나 관계기관의 허술한 감독체계에 난맥을 보이기도 했다. 대지 4,658평, 건물 2만2천144명, 지하 4층 지상5층 매장면적 4,154평, 점포수 416개소였던 삼풍백화점이 개설된 것은 지난 1989년 11월 30일경이며, 이듬해인 1990년 7월 27일에
지난 7월 1일부터 8월 25일까지 두 달간 있었던 일산 공연에서 70년 공연사상 첫 연장 공연에 성공했던 동춘서커스단이 5일부터 신도시 분당에서 추석맞이 특별공연에 들어갔다."전편만한 속편이 없다"는 영화계의 속설처럼, 서커스계 역시, "연장 공연에 흥행은 없다"는 속설이 있었지만, 그 징크스를 깬 동춘의 일산 공연은 이번 분당공연에서도 이어질 것 같다.지난 7월 1일, 일산 개막공연을 했던 동춘은 7월 30일을 끝으로 막을 내릴 예정이었으나 추가공연을 8월 18일로 연장했고, 다시 25일까지 8일을 더 연장하는 이례적인 강행군을 했다. 7월 14일의 경우, 하루 1500여명의 관객이 찾는 등 일산공연은 연일 대성황을 이루었다.특히 "일산공연의 성공이 장마철 비수기에 이루어져 침체된 동춘의 사기에 시너지 효과를 얻기에 충분하다"고 한다. 동춘의 박한국 부단장은 "천막극장에 폭우가 쏟아져 극장이 물바다가 되어 단원들이 뜬 눈으로 물을 퍼내는 숨은 희생이 있었다"면서 "다행히도 국지적인 호우가 공연이 끝난 밤 시간에 발생해, 공연에는 지장이 없었다"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샌 단원들의 노고에 칭찬을 늘어놓기도 했다. 지난 5일에 시작하여 오는 10월 13일까지 열
대쪽같은 투명행정으로 교육계의 포청천으로 통했던, 서울 영동중학교의 노상석 교장(62)이 36년간의 교직생활을 마감하고 정년퇴임식을 가졌다.29일 오후 3시, 영동중학교 멀티미디어실에서 거행된 퇴임식에는 강남교육청 박헌화 교육장을 비롯한 교육계 인사와 학교 관계자, 대한태권도협회 구천서 회장을 비롯한 태권도계 인사 등 200여명의 축하객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히 진행되었다.이날 강남교육청 박헌화 교육장을 통해 전달된 녹조근조훈장은 노상석 교장이 세운 36성상의 교육여정에 대한 흔적이 잔잔히 배어있다.26세 때인 지난 1967년 9월, 서울동대문중·상업고등학교에서 첫 교편을 잡은 노상석 교장은 마지막 부임지인 서울 영동중학교에 이르기까지 만 36년간을 교육계에 몸담으면서 실로 다양한 흔적을 남겼다.동대문중·상업고등학교, 중화중학교, 서울체육고등학교, 성동고등학교, 영동중학교 등 교육일선에서 24년간 교편을 잡았던 노상석 교장은 동부교육청과 서울시교육청 등에서 교육전문직으로 6년, 한국체육대학교 교육연구관 6년을 지내면서 고등학교 1종 도서편찬에만도 6차례 참여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했다. 그의 행보는 “불과 물이 함께 다닌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늘 치밀했다.
삼풍백화점 참사 7주기 추모식이 29일 오전 11시, 서울 양재동 시민의 숲에 세워진 횃불탑(삼풍참사 위령탑)에서 삼풍유족회(회장 김창식) 주관으로 조촐하게 열렸다.700여명의 유가족이 모인 이 날 '삼풍참사 7주기 추모제'는 ‘조문객 수’는 예년과 비슷했지만, 취재진들을 비롯한 외부인들의 발길이 줄어들어 그 어느 해 보다도 썰렁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유족회 김창식 회장은 추모사에서 “삼풍유족회의 건의를 채택한 ‘안전연대’에서 28개단체의 지원을 받아 6월 29일을 ‘안전의 날’로 제정 하자고 정부에 건의 하여, 다시는 이 땅에 사고 없는 사회를 만들자“고 제안 했다”고 밝히고, “삼풍장학재단을 설립하여 이미 유족들 중,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대상으로 장학금을 지급 했다"면서“향후 수혜자를 대폭 늘리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추모식이 끝난 후, 장학재단의 존재를 몰랐던 상당수의 유족들은 장학재단에 대해 호감과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1995년 6월 29일 저녁 5시 55분에 붕괴된 삼풍백화점은 단일 면적 상 세계 진기록인 1500여 명의 사상자를 냈다.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를 잃고 오열하던 참상의 그 날도 이미 7년이 지났고, 지금 그 자리에
지난 7월 8일 울산 공연 중에 다친 후, 5개월 동안 식물인간으로 생활했던 동춘서커스단(단장 박세환) 정명준(29 예명, 원표) 곡예사가 12월 13일 새벽 6시50분에 울산대학병원에서 사망했다.유일한 직계 유족인 누나와 외삼촌, 이모 등이 지켜 본 가운데, 사망한 고 정명준 곡예사는 지난 7월 8일 울산공연 중, 지상 7미터 높이 상공의 외줄에서 고공 오트바이 묘기를 한 후, 오트바이를 공중에 정리하는 과정에서 떨어져 5개월 동안 혼수상태로 가료중이다가 끝내 숨졌다.사망 후, 고인의 시신은 울산제일병원 영안실로 안치 되었다가 12월 15일 발인하여 울산화장터에서 화장된 후, 경남 양산시 매곡리에 소재한 '천불사' 납골당에 안치 되었다. 고 정명준 곡예사의 생전은 말 그대로 곡예인생 그 자체 였다. 홍콩배우 "원표"가 좋아 "예명"을 "원표"라 자정한 고인은 '인정 많은 곡예사, 정에 약한 곡예사'로 불렸다. 작년 5월, 동춘 국제부 중국팀이 합류했을때 부터 중국단원들을 보살피는 인정이 각별해서 중국 곡예사들과는 친 남매처럼 가깝게 지내기도 했다.중국팀 방한 초, 하루에도 몇번씩 고장나는 중국팀의 공연도구를 보고 원표씨가 자청해 수리해주면서 자타가 공인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