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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안중근 의사 의거 98주년 기념식

독립운동관련단체, 광복회원 등 300여명이 참석..

중국 하얼빈역에서 한국 침략의 원흉인 이등박문(伊藤博文)을 저격하여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린 ‘안중근의사 의거 98주년 기념식’이 26일(금) 오전 10시 남산 서울과학교육원에서 안중근의사숭모회(이사장 황인성)주관으로 열린다.

이날 기념식에는 정일권 국가보훈처 차장을 비롯해 광복회원,독립운동관련단체 회원, 시민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안의사의 약전 및 의거의 이유봉독, 황인성 숭모회 이사장, 정일권 국가보훈처 차장, 김국주 광복회장의 기념사, 청소년 글짓기 대회 시상식, 정소영 명창의 안중근의사가, 만세삼창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안중근의사(1878~1910)는 황해도 신천에서 태어나 1905년 진남포에서 삼흥(三興), 돈의(敦義)학교를 설립하여 민족계몽운동을 전개하다가 일제의 강권에 의해 광무황제가 폐위되고 군대가 해산되자 해외로 나가 이범윤, 김두성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키고, 1908년 의군장이 되어 의병부대를 거느리고 함경북도로 진입하여 경흥, 회령 등지에서 대일항전을 전개하였다.

그 후 다시 노령의 블라디보스톡․연추 등지를 왕래하면서 동지들을 만나 구국의 길을 강구하고, 1909년 봄에는 김기열․백낙길․우덕순 등 동지들과 함께 손가락을 잘라 단지동맹을 결성하며 일사보국을 맹세하였다.

안의사는 1909년 9월 노령 블라디보스톡에서 한국 침략의 원흉인 이등박문(伊藤博文)이 하얼빈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우덕순 등과 함께 거사 계획을 세웠으며, 의거 당일(10월 26일) 9시경 하얼빈역에서 기차에서 내려 러시아 군인들의 경례를 받으며 각국 영사들이 있는 곳으로 향하여 걸어가고 있던 이등박문(伊藤博文)을 권총으로 저격하여 주살한 후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1909년 11월 러시아 헌병대에서 여순(旅順)에 있는 일본 감옥으로 이송되어 심문과 재판을 받는 가운데에서도 일본의 부당한 침략행위를 공박하며 시정을 요구하였고, 조국의 완전 독립과 동양평화의 정착을 주장하는 등 일본 제국주의에 항거하다가 1910년 2월 14일 사형을 선고받은 후 1910년 3월 26일 순국했다.

정부에서는 의사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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