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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

9월의 독립운동가 한국광복군 제1지대장 이준식 선생


[NBC-1TV 박승훈 기자]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한국광복군 제1지대장 이준식(李俊植) 선생을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1900년 2월 18일 평안남도 순천에서 태어난 선생은 3·1운동 직후 중국으로 건너가 1921년 중국 곤명에 위치한 운남강무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만주 대한통의부에서 활동하다 1924년 정의부 중앙위원에 선임되었으며, 1927년 오동진이 일제에 체포되자 그 후임으로 정의부 군사위원장에 임명되었다.

1928년 만주지역 3부가 통합해 조직된 국민부의 군사위원장에 선임된 후, 1929년 국민부의 민족 유일당으로 조선혁명당이 창설되자, 조선혁명당 중앙위원 및 산하 무장 단체인 조선혁명군 참모장으로 활약하였다.

선생은 노선 대립 등으로 만주지역에서 독립군 활동이 어려워지자 1931년 상해로 옮겨 중국군 고급장교로 복무하였다. 1937년 중일전쟁 발발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장사, 광주 등지로 이전하게 되자 임시정부 청사를 확보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였다.

1939년에는 임시정부 군사위원회 화북지구 특파단으로 서안에 파견되어 병사를 모집하고 훈련시키는 임무를 맡았다.

선생은 1940년 9월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총사령부 참모에, 같은 해 11월에는 제1지대장에 임명되어 활동하였으며, 1941년에는 한국광복군 제1징모분처 주임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43년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고급 참모로 임명된 선생은 같은 해 한국독립당 중앙집행위원에도 선출되었다. 정부는 항일 전선에서 무장투쟁을 전개한 이준식 선생의 공로를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국가보훈처는 평생 무관으로 항일투쟁에 앞장선 이준식 선생의 삶을 조명하기 위해 9월 9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공훈선양 학술강연회를 개최하고, 9월 한 달간 천안 독립기념관과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선생의 생애와 한국광복군 활동을 담은 사진을 전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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